죄로 인해 괴로울 때
요한 일서 1:8-10절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안 믿는 사람들이 기독인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네들은 도대체 뭘 그렇게 잘 못해서 마음을 찢으며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나라는 것입니다.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면 감독도 이상한 눈으로 기독교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전도연이 교회에 가 있는데, 보혈을 지나라는 찬양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그 찬양을 부르면서 깊게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생각하는데 그것을 감독은 어색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영화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뭐가 그렇게 죄라고 생각해서 질질 짜는가 비꼬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죄인입니까? 나 정도면 잘 사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우리는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독인들은 세상 사람들 보다 착하게 사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에서도 잘못된 것을 용서해 달라고 하고, 십자가만 생각하면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잘 못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유형의 죄에 대한 모습들이 나옵니다.
첫번째는 1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가 죄인이고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 구원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바로 자기가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지존파라는 폭력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는 그랜저가 가장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요새는 안 그렇죠? 소나타가 서민들 타는 차, 그랜저가 중산층이 타는차로 바꼈는데, 아마 여러분과 저는 빈층에 해당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존파는 부자들을 혐오해서 사업가를 납치해서 잔인하게 살해 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폭력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체포되고 나서도 더 많은 부자들을 죽이지 못했다고 발설하는 등 자신의 죄에 대한 뉘우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울 어느 교회의 50이 넘은 집사님들로 구성된 전도팀의 끈질긴 사랑과 수 십 통의 편지, 그리고 전도지 등에 의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회개한 지존파들이 전도 특공대원들에게 보낸 답장의 일부이다.
"아저씨, 이 죄 많은 놈 때문에 고인이 되신 소윤오씨 자녀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죽음으로써 사죄하고 싶습니다."(강OO)
"법정에서의 거만스런 제 행동을 지켜보셨을 것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절대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일 줄 몰랐습니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 자기 한 몸 살아가기도 바쁜데 제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악마의 대리인"(김OO드림)
그리고 지존파의 두목격인 김OO은 11살 때, 교회에 다니다가 중단했다고 하면서, 만약 계속 신앙 생활을 했더라면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편지를 통해 밝히고 있었다.
즉,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제시하는 것을 듣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잘못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합니다. 빛을 비출 때 바로 우리는 우리에게 묻은 얼룩들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비춤을 받을 때 우리는 바로 우리가 어둠 속에서 살았고 죄 속에서 살았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적인 설교로 유명하신 김남준 목사님은 회심과 거듭남에 대해서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을 그의 돌이킴이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는데, 거듭남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거듭났기 때문에 잘못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잘못을 깨달았기 때문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거듭났다고 하지만, 사실은 반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비추임을 받았기 때문에 잘못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잘못을 깨닫고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빛에 비춤을 받았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고백하게 되고 죄 때문에 안타까워 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8절부터 32절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런 죄악을 행하면서도 죄로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일은 당연하다고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진리 가운데 비추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2주 동안 저의 모습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의 정한 말씀이 다 저에게는 콕콕 다가와 저를 찔렀습니다. 또한 사경회 때 사경회 강사님이 이 구절을 읽어주셨는데 저도 모르게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삶에 있어서 지쳤다고,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게 사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것인가? 그리고 냉소적인 것을 쏟아 놓던 저에게 불공정한 대접을 받는다고 그냥 내 삶 내버려 두라고 그러고 지내는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여지 없이 그냥 들려졌습니다. 제가 무기력하게 앉아 있을 때 들려지는 말씀은 저에겐 큰 은혜였습니다. 그 모든 죄악이 지적되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보혈을 흘려 주심은 다시금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혹시 자신의 죄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그것이 은혜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가 죄인인 줄도 모르고, 영원한 심판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자신이 올바른 사람인 것처럼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빛에 비추임을 받은 사람, 하나님 말씀에 비추임을 받은 사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김없이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무릎꿇어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울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며 반신 반의 했던 사람, 같이 비난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불신을 깨닫고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압니다. 로마서 말씀을 통해 압니다. 최소한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거듭나야 할 사람들이며,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겨져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너의 삶 가운데 문제라고 지적하심을 받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청소년 사역을 하는 한 동기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점점 듣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단지 성적을 중요시하는 메시지들이 많이 들려집니다. 과연 어디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듣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해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나중에 처형 받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일은 해서는 안된다고 따끔하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사랑 가운데 권면과 훈계 해 주는 부모님이 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보게 만드십니다. 그것이 아프더라도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 잘못된 관념은 1장 8절처럼 자기는 이제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나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기 때문에 막 살아도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육신은 멸하여지고 영혼은 구원받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삶의 문제는 의미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단언합니다. 죄가 없다, 나는 죄와 상관없다라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뿐이며 하나님의 진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가 사함받고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죄를 범하는 삶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라고 말하면서 이 땅에서 믿어도 죄를 범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완전함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며 그것이 주님의 나라에 이를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절은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거듭나면 그만이다. 이제는 죄와 전혀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구원파는 그래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 우리 인간의 한계,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용서 받았으니 이제 끝났다라고 하면서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깨달아야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데, 그런 반성을 하지 못함은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조차 못 느끼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구원받았다 더 이상 삶은 중요하지 않다.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생각하시며 겸손으로 이 땅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살겠습니까? 아니면 막 살겠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항상 우리 가운데 죄악된 본성이 남아 있고, 그 모습들을 뉘우치고 돌이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한 스님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부좌를 틀며 하나님 아버지 관세음 보살이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 가운데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닮은 사람으로 자라가고 자신의 행동을 교정하며 나아갈 필요는 바로 현재 우리가 범하는 죄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내 삶 가운데 부족한 점들 때문에 가슴 아프다면 여러분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고 빛이 비추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랑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분이 나는 예수님의 이런 말씀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게 뭐 중요합니까? 말씀을 못 지킬 수도 있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작은 말씀에도 가슴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것이며 진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도 전혀 내 마음 속에 어떤 울림도 없고 찔림도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빛이 내 안에 비추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더러워진 옷을 입고 어둠 속에서는 더러움이 보이지는 않지만, 빛 가운데 나가면 우리 모습 가운데 더러움을 이내 볼 수 있고 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죄 가운데 괴로울 때 그것을 그냥 방치하시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분의 용서를 구하는 삶이 얼마나 귀한 삶이겠습니까?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시간 내가 죄인인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지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을 성령 안에서 발견하시는 분은 하나님 제가 돌이키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성령 하나님의 고치심 새롭게 하심을 원합니다. 저에게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죄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작입니다. 구원받음의 증거입니다.